6일차
폴란드 크라쿠프 인근 숙소 → 아우슈비츠 수용소 → 체코 올로모츠 → 체코 프라하 → 프라하 인근 숙소
폴란드 크라쿠프 인근 숙소(Hotel WITEK) → 아우슈비츠 수용소 → 체코 올로모츠(점심) → 체코 프라하 → 프라하 인근 숙소(ACADEMIC HOTEL & CONGRESSCENTRE)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동거리가 장난 아니다... 장장 540여km...
이동을 하며 차창밖으로의 스쳐가는 풍경도 여행의 하나라고 생각은 하지만 답답한 버스안에서 보는거라 좀 아쉽다..
7시30분 출발이라 한 6시쯤 일어났을려나?
크라쿠프 인근의 숙소주변에 뭐가 있나 싶어 잠시 나가봤다...
근데 딱히 인근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막상 가볼만한데가 없더라..
숙소외관도 생긴지 얼마안되었는지 깔끔하네..
언제나 즐거운 조식시간..ㅎ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함께 사진찍고 싶다고 정중히(?) 부탁을 했었다...
눈에 띄는 직원들 중 가장 젊어보였고 이미지도 괜찮았었는데 사진상으론 좀 할머니스럽기도 하네..ㅎ
폴란드 현지가이드가 예전에 사귀었던 폴란드 여친 얘기를 해줬다..
빨려들어갈 것같은... 눈동자에서 휘튼치드가 막 뿜어져 나올것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여자였는데 날씨에 따라 바뀌었다던가? 여튼 눈동자 색깔이 변하는걸 보고는 기겁을 했다는 얘기를 한다..ㅎ
그 폴란드 현지 가이드 말로는 폴란드 여자들의 미모가 장난 아니라는데 유럽쪽 여자들이 대부분 예쁘다는건 알겠지만 폴란드라고 해서 딱히 더 예쁜지는 잠깐봐서 모르겠더라..ㅎ
오늘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떠나는 날이다...
마침 날씨조차 우울하다.. 늘 그랬나?ㅎ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많이 들었지만 이게 폴란드에 있었는지는 좀 새삼 스럽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동묘지들...
수용소에 도착을 했다...
여전히 날씨는 우울~~
현지가이드가 사람이 많을거라며 7시30분쯤에 출발해서 8시30분이 안된시간에 도착을 했는데도 많은사람들이 수용소를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관람 에티겟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크게 웃거나 떠드는 사람이 없다..
수용소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하고 여기서 지급하는 무선해드폰만 사용을 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야한다..
저 앞에 보이는 문이 입구...
우리도 입구로 들어간다...
사진상에는 잘 안보이는데 입구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표어 'Arbeit macht Frei(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가 있다
이 수용소는 1940년 봄에 만들어 졌으며 그해 6월 폴란드 정치범들이 최초로 수용되었고 1941년부터 히틀러의 명령으로 대량 살해 시설로 확대되었고 1942년부터 대학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서 밖을 본 모습...
불과 70여년전 여기는 지옥이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크게 1 ~ 3수용소까지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메인 박물관이 있는 1수용소이다..
이 건물들은 전쟁전엔 폴란드군인들 막사로 그나마 좀 괜찮았는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2수용소의 환경은 아주 열악 했다고...
수용소안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갔다..
이 수용소가 아우슈비츠에 들어선 이유가 유럽의 중심이라 수용자들을 실어나르기 편해서 여기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난 유태인만 학살 당한줄 알았는데...
나치가 이곳 수용소로 130만명을 수용했는데 그중 약 110만이 죽었고 그중 유태인이 90%라고 적혀있는거 같다..
근데 검색을 해보면 어떤곳은 400만이 학살되었다고도 기록되어있고 또 어떤곳은 150만...
이게 1수용소만 그렇다는건지? 그건 아닌거 같기도 한데...
다 조금씩 다른거 같지만 몇년사이에 100만이 넘는 사람이 죽어나가다는건 거의 살해공장이라 해도...
아무도 저 안에 든 가루가 사람의 골분이라고 들었던거 같다..
수용소로 이송되어 올때는 캐나다로 이주하는 줄 알고 왔다고 한다..
근데도 마치 앞날을 예견이라도 한듯 표정이 넘 어둡다..
사진들만 봐도 분위기가 넘 무겁다..
저 나치군의 손가락 하나에 의해서 생사가 갈렸다고 한다..
수용소에 들어서자마자 70%이상은 저 손가락 하나에 의해 바로 가스실로 향해졌고 나머지는 11시간의 혹독한 노동으로 평균수명이 52일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 2끼의 식사에 1500칼로리? 여튼 160cm에 70kg의 체구를 가졌던 여성이 발견당시 체중이 25kg으로 변해 있었다구 한다..
노동력이 없는 아이들은 바로 가스실 아니면 실험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건물내부 계단이 특히하게 사람 발 딛는곳이 닳아있다,.
설계를 저렇게 한건지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 닳은건지...
수용소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는것도 한계가 있다보니 노천에서 화장을 했다고...
대량 학살시 사용되었던 치클론B라고 한다..
살충제라고 들었던 기억이...
학살에 사용되었던 치클론B 빈통들...
학살되었던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머리색깔이 가스실의 독성땜에 모두 탈색이 되었다고...
저 머리카락을 잘라서 양탄자 같은걸 만든것도 전시하고 있었는데 촬영이 금지 되어있었고 찍고 싶은 맘도 없었다..
근데 웹상에 검색해보면 있더라는... 저 억울하게 희생된 망자의 머리카락으로 양탄자뿐만 아니라 의류로도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수용자로 끌려온 사람들의 짐을 분류하는 작업인듯...
수용자들의 안경
수용자들의 의족등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노동력이 없기에 수용될 겨를도 없이 바로 가스실로 향했을것이다..
수용소가 아닌 이주를 생각했었기에 주방 살림살이들도 다 가지고 왔을것이다..
수용자들이 가지고 왔던 가방들...
가방에는 이름들이 다 적혀있었다..
아마도 나치는 가방에 이름을 적을 필요가 없음에도 끝까지 속이기 위해 나중에 찾을것이라는 거짓말로 이름을 적게 했을것이다..
아기옷과 신발들을 보고는 정말 코끝이 찡하더라..
정말 시대를 잘못타고 났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아무 죄없는 어린아이들이...
안에서 희생된 국적의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눈물을 닦는 여성관람객들도 간간히 보였다..
정말 산더미 같이 희생자들의 신발이 쌓여있다..
소련군에 의해 나치가 후퇴하면서 흔적을 없애려고 부수고 불태우고 하였지만 그 양이 어마어마 하기에 완전히 흔적을 없애진 못하였다고...
찍은 사진에는 없는데 신발이 지금봐도 참 예쁜 신발들이 있었었다...
참 암울한 유품들이지만 인솔자도 그러고 나도,와이프도 말하길 그 시대에도 참 예쁜 신발을 신고 다녔구나 하고 느꼈다고...
그래서 더 슬픈거 같기도 하다...
구두솔과 면도솔 그리고 구두약인듯...
수용소 창밖모습...
전기 철조망...
기둥에 애자 가 설치되어있다...
HALT(독어) , STOJ(폴란드어)는 멈춰! 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데 저 해골표시만 봐도 알겠다...
철조망과 철조망 사이에는 자갈을 깔아서 밟으면 소리가 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단 한번의 교수형이 집행되었던 교수대 라고 한다..
현장 최고책임자인 수용소장의 사형을 집행했던... 수많은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독가스실 바로 옆에 보존이 되어 있었다...
독가스실과 화장장이 같이 있었는데 그 굴뚝이다..
워낙에 많은 화장을 하다보니 주변에 그 연기땜에 힘들었다고 한다...
샤워실 들어가는 입구...
샤워를 시켜준다고 옷을 다 벗게하고 바로 천정으로 가스를 주입했다고 한다.. 그 옆방에는 바로 화장하는 아궁이가 있었고...
가스실 입구로 들어가서 옆에 희생자를 화장했던 화장장까지 관람을 했다..
군 생활할때 화생방 훈련시 가스실 들어갔던 기억보다 더 기분이 더 그렇다...
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있었는데 가스실 내부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사진이 올라와 있더라...
여기 이 가스실에서만 한번에 250명씩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정말 이런 믿을수 없는 일들이 불과 70여년 전에 있었다니...
전후 독일은 자신들의 전쟁범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함께 지속적으로 피해국가에게 사죄와 배상을 했다고 한다..
독일의 청년들이 이제 그만할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목소리가 나왔을때에도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것이라며 피해배상을 멈추지 않았다고...
또 어디를 보니까 독일이 행한 참회의 정점은 1970년 당시 서독 수상이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전쟁희생자위렵탑'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전쟁피해 국민들이 독일에 가졌던 증오심과 적대감이 상당히 완화 되었다고...
그리고 독일 역사교과서에는 피해국가의 것으로 오해될 만큼 당시 잘못을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이에 반해 나치 못지않게 아시아 국가들에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일본은 참 너무나 대조적이다..
현지 인솔자가 이런저런 가슴에 와 닿는 얘기를 참 많이 해주었는데 마무리를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것'(맞나?)이라는 수용소에 걸려 있는 문구를 얘기해는데
가슴에 더욱 더 확 와 닿았다..
수용소 관람을 끝내고 이제 체코로 간다...
여기가 아마도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이었던듯...
달리면서 어디에서건 유채밭은 참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첨에는 우와 하면서도 자꾸보면 그냥 그저그런...ㅎ
한참을 달려 체코의 올로모츠에 들어간다..
올로모츠는 점심 먹으러 잠시 들러는 도시일뿐..ㅎ
체코~~~
체코는 유럽중우에 위치한 내륙국이고 면적은 울나라보다 조금 적고 인구는 천만이 조금 넘는다고...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되었으며 나에겐 그저 드라마 제목(?)등에서 보아왔던 프라하가 더 귀에 익은 뭐 그런 나라이다..
이 올로모츠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성삼위일체상'이란것도 있고 볼거리가 많은곳이라는데 뭐 워낙에 어딜가나 그래서 여기선 밥만먹고 간다..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ㅎ
이 올로모츠는 체코란 나라가 그 옛날 '보헤미아'왕국과 '모라비아' 왕국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나라라고 하는데 보헤미아의 수도가 프라하고 모라비아의 수도가 이 올로모츠 였다고 한다..
지금 체코의 수도는 프라하지만 이 올로모츠도 그만큼 긴 역사를 갖고 있어 훌륭한 여행지가 될것 같다..
그리고 '보헤미아'란 말을 참 많이 들었었는데 이 체코를 지칭한다는 것도 첨 알았다..
점심먹으러 왔던 식당이다..
참 고풍스럽고 조오타~
지금 사진으로 보니 좀 느끼해 보이지만 그런데로 맛있게 그리고 싹 비웠던 기억이다...
안에 내부도 일정동안 많은 식당들이 그랬지만 엄청 깔끔하고 규모가 있었던 기억~
올로모츠를 검색하다보니 정말 완만한 구릉지 지대로 완전 윈도우 바탕화면에나 나올법한 그런곳들이 있는거 같던데 출사위주의 여행을 한번 와도 참 좋을것 같다..
이제 유채꽃밭도 지겹군..ㅎ
그래도 하늘에서 볼때는 이쁘던데..
경비행기도 보이고...
얼핏보면 잠자리 같다..
가끔씩 화장실도 이용할겸 휴게소 같은곳을 들린다..
과자를 보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는 아내..ㅎ
난 요런 구름들이 떠 있는 날이 참 좋던데...
이제 프라하까지 얼마 남지 않은듯 하다..
교통체증도 좀 겪고...
드디어 옛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이자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입성~~~~~~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라고...
눈앞에 보이는 체코 중앙역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기로 했다고...
현지 가이드를 따라 바삐 이동하면서...
돔형으로 생긴 이 건물 내부는 중앙역 구 건물같았고 이곳을 벗어나자
이런 쇼핑센터와 연결된 현대식 시설이 나왔다..
여기도 역에 포함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잔디밭에 홀로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는듯한 여성...
좀 생소했다..
바츨라프 광장 초입에 있던 멋진 체코 국립박물관...
1890년에 완공되어 세계 10대 박물관에 들어가며 주로 역사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한다고 한다..
안에는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린 그냥 외관만 구경을..ㅎ
국립박물관 앞에서 본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의 프라하의 중심이 되는 광장이며 총 길이 750m, 가로 60m정도 된다고한다..
신도시 광장이라고 하기도 한다지만 6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라고..
박물관 앞에는 '바츨라프' 1세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바츨라프'는 10세기경 보헤미안 기사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치고 체코의 국난을 극복했다는 체코의 영웅이라고 한다..
이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봄' 사건 당시 점령군과 시위대의 격돌로 100여 명이 희생당한 장소라고 한다..
지금은 프라하 최대의 번화가이며, 상업·교통·문화의 중심이라고..
프라하의 봄 이라는 영화때문인지 매우 귀에 익은데 이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을 말한다고 한다..
이 운동을 막기 위하여 불법침략한 소련군의 군사개입사건을 포함하여 '체코사태'라고도 한다고...
'얀 파라'와 '얀 자익' 추모비
이 두사람은 서로 다른 시기에 민주화와 독립을 위해 바츨라프 광장에서 분신자살을 한 청년들이라고 한다..
다음장으로 계속.....
'일탈(국외) > 동유럽(독일,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폴란드,헝가리,체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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