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 시티투어 3편 (더르바르광장(허누만 도카),파탄(라릿푸르))
스얌부나트를 보구 일사천리로 다음 행선지로 이동을 한다..
원래 일정은 오늘 한곳을 더 보구 내일 또 한곳을 가도록 되어있었지만 뭐 근성근성 보다보니 예상보다 한곳을 관광하는 소요시간이 적게 걸렸다..
먼지 가득한 카트만두에 오래머물기도 힘들어 일정을 조금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생각한것이 치트완 국립공원이었는데 그곳은 이동하는데만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담엔 오스트렐리안 캠프에서 재미교포 아줌마한테 들었던 나갈곶이 생각이 났다..
가이드도 괜찮다하고 짐까지 두고나온 어제 묵었던 호텔만 켄슬이 되면 될꺼 같은데...
일단 여행사 사장님이 좀 알아보시더니 호텔켄슬도 되었고 약간의 교통비만 추가로 지불을 하고 일정을 변경 하였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오니까 일정변경도 가능하고 편리하다...
그래서 내일 일정까지 조금 당겨서...
먼지가 폴폴날리는 길가에서 이불 바느질을 하다니 울나라 아줌마들이 보면 기절할꺼같다..
하천은 하수도와 별반 다를바가...
저물이 흘르고 흘러 바다로 들어갈것 생각하니 끔찍하다...
구멍가게란 말이 이런곳을 두고 나온 말인듯...
어느곳 할꺼 없이 유적지 입구는 난장판이다...
도시전체가 난장판이니 뭐 이상할것도...
더르바르광장(카트만두)
이번엔 일정표엔 허누만도카로 되어있었는데 더르바르 광장이 네팔의 옛 왕궁이며 허누만 도카 앞에 있는 광장이라고 한다..
더르바르는 왕궁이라는 뜻이라고...
12세기에 건설이 시작되기 시작해 18세기의 샤 왕조, 19세기의 라마교 통치자들이 완성하였다 하고
박타푸르, 파탄등에 있는 3개의 왕궁광장중 하나로서 이곳 역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살아있는 여신을 모신 쿠마리 사원도 있는데 울나라에서 미인을 두고 곧 여신이라 하기에 쿠마리는 '이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ㅎ
여기가 살아있는 여신을 모시는 쿠마리 사원...
입구에서 여신 사진을 파는듯했다..
관람객은 절때 여신의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럼 사진을 파는사람들은...?
쿠마리 사원내부..
저 위에 3개의 창중 중앙창으로 30초정도 얼굴을 보여준다...
하루에 몇번 뭐 이런게 정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볼 수 있는 시간대는 따로 있다는걸로 들었고
어느정도의 관광객이 모여야 왼쪽창에 팔을걸고 앉아있는 아저씨가 쿠마리에게 신호를 주는듯 했다..
쿠마리가 등장해있는동안 카메라는 그 어느곳도 비출 수 없다는...
쿠마리가 등장할때까지 비둘기가 투하하는 *를 피해 처마밑에 잘 숨어 있어야 한다..
비둘기가 어찌나 많은지 온통 비둘기 *으로 도색이 되어있었다...
쿠마리에 대한 얘기는 예전에 TV에서도 한번 본기억이 있는데 보통 2~3세때 간택되고 쿠마리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까다로운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또, 쿠마리가되면 여신으로써 추앙받으며 살게되지만 어린나이에 부모를 떠나 사원밖에는 출입을 할 수없다고 한다..
또한 쿠마리들은 초경이 지나면 자격을 박탈당하고 사원밖으로 쫓겨나게 되는데
예전에는 쫓겨난 쿠마리들은 남편이 일찍죽는다는 속설때문에 결혼도 할수없고 집안이 망한다는 이유로
집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평생 창녀굴 같은 곳에서 외로운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지금은 그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10년정도를 그렇게 살다가 사회에 나오면 적응은 쉽지 않을듯 하다..
쿠마리가 잠시 나왔을땐 아주 앳된 얼굴이었는데 표정은 밝았다...
다함께 인사를 드렸던가? 기도를 드렸던가 여튼 뭐 시키는게 있었는데 해놓고도 기억이...
여기는 비둘기도 먹이를 줘서 키우는듯 했다...
어떤남자가 먹이그릇 같은걸 들고오자 일순간에 날아올랐는데 완전 식겁을 할 정도다...
때마침 옆을 지나고 있었는데 깃털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 숨도 못쉴정도였다....
왕이 있었던 건물이라도 들었던 기억이...
어디가나 저 창문은 살들이 참 촘촘하다...
어두컴컴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좁은 계단을 따라 건물에도 올라가 보았다...
왕의 초상화로 보이는 그림도 보이고
불안불안 하지만 끝까지 올라가 보았다...
저 창을 통해 아래로 내려다 보며 통치를 했을까?
일단 마이크가 없던 옛날 통치자들은 목청이 좋아야 할것 같다...
제일 꼭대기층 내부다..
볼때마다 탐나는 쿠크리 칼~
'허누먼' 이라는 원숭이 신상 이라고 한다..
데이트를 즐기는듯...
카트만두 어느곳이든 세계문화유산이란 말이 무색할정도로 놀이터 삼아 뛰어노는 아이들, 저렇게 올라가 데이트 하는 연인들,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 여하튼 우리네 상식으론 이해가 좀 안간다...
저렇게 방치해도 보존이 잘 된다면 오히려 좋겠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포즈의 사람들...
세계문화유산이자 곧 이들에겐 지나는 사람들 구경하며 편하게 쉴곳이다..
이제 재래시장을 통해 타멜까지 걸어간다...
타멜은 울나라의 이태원쯤 된다고...
한 2~30분정도 걸었을까?
역시나 사람도 넘 많고 해서 피곤하다...
이땐 별로 많은것도 아니라고... 많을땐 정말 뚫고 나가기도 힘들다고 한다...
여경인가?
아님 주차단속? 여튼 제복이 별로 땟갈은 안난다..ㅎ 옆에 누워있는 검둥이는 또 뭔지...
흔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생선과 건어물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악취가 코를 찌른다..
고기를 썩여서 파는건지 저건 절대 못먹을꺼 같았다...
돌에 문양을 넣는 사람들...
여긴 어지간하면 기계없이 손으로 다하기에 수공예품은 괜찮을듯 하다...
파탄(라릿푸르)
시내관광의 마지막 일정인 파탄에 왔다..
파탄의 별칭은 ‘라릿푸르(Lalitpur)’로 '미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왕국 건설에 공을 들여온 네와르족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라 하고 광장 주변에는
10여 개의 크고 작은 사원이 모여 있으며 이곳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박타푸르, 허누만 도카등과 더불어 다 건축양식이 비슷비슷한듯 느껴지지만 요기도 꽤 멋있었던 기억이...
골든게이트?
설마 진짜 금은 아니겠지...
여긴특이하게 입장권을 저렇게 목에 걸고 다니게 되어있다...
저분은 꼭 한국사람 분위기도 좀 나는데 사진 찍는사람 안보고 왠지 날 보구있는 느낌이...
설마 약수를 받으로 온건 아닌듯 하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물이 풍부한 나라라 하지만 국가에서 이용을 잘 못하니 모든불편은 국민이 다 겪는듯...
전망이 좋대서 나즈막한곳에 올라서...
목걸이도 기념이다..ㅎ
카트만두 시내일정을 마치고 나갈곶으로 왔다..
나갈곶의 일몰과 일출이 보기 좋다는데 오늘의 날씨로 봐서 일몰은 그렇고 내일의 날씨도 여태까지 상황으로 봐선 희망적이지 않았다..
여기도 해발은 2000정도...
한참을 꼬불꼬불하고 좁을 길을 따라 올라온 호텔인데 난방이 안된다..
그래도 여기서 거의 최고급에 준하는 호텔이라는데...
호텔직원이 가스히터를 가져다 주는데 그걸 피우니 좀 살만하긴 했었지만 호스 연결상태도 글코 가스냄새가 좀 심했다..
그래서 자기전까지만...
여기는 10시가 되면 정전이라고 객실에는 양초가 비치되어 있었다...
분위기용 양초가 아닌 정전대비용으로..ㅋ
이른아침에 호텔옥상에서 본 풍경...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긴 했는데...
혹시나 기적을 바랬었지만 역시나 날씨는 별로 였다. 내 복에 무슨...
그래도 탁한공기의 카트만두를 벗어났다는데 의미를 두고...
저 호텔과 우리가 묵은 호텔이 가장 높은곳에 있다고...
시설은 우리가 묵은데가 쪼매 더 좋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시설이?ㅎㅎ
옥상은 요로코롬 좁다... 나혼자 움직이기에 딱 맞을정도로...
사실 올라오는 사람도 없었고...
우리가 묵었던 호텔...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의 메뉴는 선택권이 없다..
그냥 주는데로 먹어야 한다는... 어제 저녁엔 중국식 볶음밥 비슷한게 나왔는데 먹을만 했었다...
우린 아침에 걸어서 전망대까지 걸어 가보기로 한다..
호텔입구도 못올라 와서 다시 탄력받아 올라온 우리의 전용차를 타고가도 되지만 먼지가 별로 없는곳이라 찬찬히 걸어보기로...
왕복 3시간쯤 걸리는 코스라 갈때만 걸어가기로 한다...
학교 교실....
깨진 창문이나 쫌 갈아 낑구지 좀 안스럽다...
여기까지 버스도 올라오나 보다...
'나갈코트'인데 '나갈곶'이라고 하는가보다..
재미교포 아줌마가 나갈곶 그러길레 첨에는 울나라 말로 나가야 할곳을 가르키는 줄 알았다..ㅎㅎ
포카라의 사랑코트와 마찬가지로 전망좋은곳에 같다 부치는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대부분 약간의 오르막길로 계속 찬찬히 걸어 올라간다...
유채꽃밭이 작지만 예쁘군...
회사나 어떤단체에서 야유회를 나온듯...
여기는 가이드말로는 남녀데이트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오는데 뒤에 여자가 얼굴을 좀 가렸다 하면 대부분 데이트족들 이라고 가이드가 귀뜸을...
그러고 보니 선글라스에 머플러에 다양하게 가리고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위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여긴 의무는 아니고 모병제라고 하고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도 통제나 이런건 없고 저렇게 일반인들과 섞여서...
희미하게나마 설산들이 보인다.. 마치 도화지에 붓으로 그냥 끝부분만 살짝 그려놓은듯...
정말 날씨가 좋을땐 에베레스트까지 보인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여튼 포카라든 카트만두든 시내관광은 날씨땜에 쫌 아쉽다...
저기가 전망대...
붜 별건없었다..
요기 밑에서 네팔과자 맛이나 좀 보자 싶어 음료수랑 과자 두봉지 샀었는데 둘이서 다 못먹고 버렸다..
맛은 울나라 과자보다 훨 못하더라는....
전망대에서도 1~20분쯤 머물렀었는데 저정도 더이상은 잘 안보인다..
어쩜 저정도 본것만으로도...
데이트중인가보다...
좋겄다..
아까 그 야유회 나온 무리들은 춤판이 벌어졌다..
경쾌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나이트클럽 많이 다닌 사람들 처럼 꽤 흥겹게 놀더라는...
무슨 중요한 건물이라고 들었는데 그새 까먹었다...
점심먹으로 식당에 와서 찍은건데 저 사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EBC에서 해발 5550m의 칼라파타르에 올라서 찍은 에베레스트 사진이라고..
젤 뒷편에 있는 시커먼 산이 에베레스트인데 동기가 내년엔 칼라파타르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한다... 둘다 ABC에서도 고소를 느끼는 체질이지만 참 끌리는곳이긴 하다...
하지만 저곳 갈라파타르는 EBC코스입구 까지 가는것만으로도 목숩을 담보로 해야 할것만 같은 느낌이다..
육로로는 버스로 하루 + 걸어서 6일 도합 7일정도를 가야 겨우 EBC코스의 초입 입구에 도착을 할 수가 있고
그렇담 보름정도의 기간에 트레킹을 끝내기 위해선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게 여행사 사장님 얘기로는 1년에 한번정도는 비행기가 추락을 한다고 한다..
루크라의 날씨도 안좋을때가 많고 활주로 또한 짧고 연착도 밥먹듯 하는데 어떨땐 1주일도 못 뜰때도 허다하고 루크라에 발이 묶이면 잠자리도 문제지만 먹을것조차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도 갈 사람은 다 간다는게 좀 신기하기도 하고...
어쨌던 무척 가보고는 싶은곳이나 막상 EBC를 간다고 해도 EBC까지의 성골율도 그닥 높은거 같지 않고 쉬리 말로는 17~8명정도 갔는데 갈라파타르는 2명인가 3명 성공했다고 하니
고민이 아니될 수가 없다..
아~ 갖은 고생을 다해서 올라간 저기서의 벅찬 감동은 이루 말 할수가 없을듯...
요기는 우리가 다녀온 나갈곶의 뷰인데 우린그래도 쬐끔이라도 본데 의미를...
계속 맘에만 두고 있다가 타멜에서 쿠크리 칼 가게에 들어와 봤다...
한순간에 시선을 사로잡는 저 칼들... 정말 내눈엔 멋있었다..
일단 한국에는 날길이 15cm이하는 괜찮다는 정보를 몇개의 채널을 통해 접하고 아쉽지만 15cm이하로 기념이 될만한 칼을 골라 보았다..
저게 보기완 다르게 정말 면도날처럼 날카로왔고 울나라 대장간에서 만들듯 다 손으로 두들겨서 만든다고 한다..
쿠크리에 대해서 한번 찾아 보니...
" 전설의 구르카"
1815년경 인도를 정복한 영국군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서 네팔 왕국으로 쳐들어 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영국군은 전설속에서 존재한다는 오로지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민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되고
네팔의 소수 산악부족인 구르카와의 전투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된다..
'강한 적은 친구로 만들어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영국군은 참담한 패배를 안긴 구르카족을 높은 급료를 주고 용병으로 고용하게 된다.
이때부터 구르카의 전설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세계 제1차대전에서 구르카들은 세포이군단(영국군에 배속된 인도인 부대)의 일원으로 참가했고
세계 제2차대전에서는 총 25만의 병력으로 참가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의 버마전선에서 일본군은 정글은 당연히 자신들의 독무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연합군으로 참전한 영국군의 지휘관들 역시 '일본군을 잡으러 정글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상어를 잡으러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라고 실토했었다..
그런데,
일본군의 정글전 자신감과 전쟁에서의 우위를 여지없이 뒤집어 버린것이 바로 구르카였다.
쿠크리 한자루 들고 소리없이 정글속을 누비고 일본군의 목을 따가는 구르카병들의 사신같은 전적은
버마전선의 '임팔'전투에서 쿠크리 한자루로 일본군 24명의 목을 잘라서 영국의 최고훈장인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받은
구르카대대의 '디마푸르'중사의 기록에서 그 진가를 보인다.
한국전쟁에서 영국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구르카대대는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 1개사단을 전멸시켰고,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구르카가 온다!"는 말한마디에 포트스탠리를 수비하던 아르헨티나군 전체가 항복하고 투항해 버리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구르카와 쿠크리"
구르카족은 한사람 한사람이 고도의 군사훈련을 시킬 필요가 없는 전사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네팔은 현재도 마찬가지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한 양동이의 물과 땔깜을 구하기 위해서 맨발로 눈덮인 히말라야산을 오르고 내리는 일상생활은
어느나라의 특수부대가 받는 훈련보다 더 가혹하고 힘들며, 공기가 희박하한 고산지대에 태어나고 생활한 그들의 심폐기능과 체력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어떠한 군사훈련으로는 얻어질 수 없이 뛰어난 것이다..
구르카족이 열살을 전후해서 성인식을 치르면서 한자루씩 갖게되는 쿠크리 단검은 그들의 용기와 명예의 상징이다..
쿠크리를 빼어들면 반드시 피을 묻혀야 한다는 계율은 그들의 적이 이 칼에 대해서 갖고있는 원초적인 공포로 작용한다..
쿠크리를 한번 보여달라고 간청하는 영국인 동료를 위해 칼을 뽑아든 구르카병사는 그 칼로 자기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피를 묻힌 후에
칼집에 꽂았다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그 뒷받침을 해준다..
현재도 구르카 젊은이들의 최대 목표는 2~3년에 한번씩 부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영국군 입대시험이다..//
....이런 내용이 있다.
읽고 보니 더 멋져 보인다는..ㅋ
이 칼은 물소 같은것도 잡는다고 한다...
저런칼로 염소나 물소등의 목을 한칼에 날려 버린다고... 얘기만 들어도 끔찍했다...
어쨌던 저 가게에 있으니 시간 가는줄 몰랐다..
결국엔 12~3cm정도 되는 나이프를 하나 찍었는데 좀 더 저렴한것도 많았지만 38달러를 달라고 한다...
네팔물가에 비해 저렴한 가격도 아니고 또 많이 깍아야 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너무 오래 구경을 하고 점원의 시간도 많이 뺏아 32달러 정도까지만 깍았다...
근데, 결과적으로 인천공항에서 빼앗겼다...ㅠㅠ
캐리어백이 빨리 안나와서 좀 불안하긴 했었는데 가방에 노란색으로 된 이상하고 커다란 물체가 달려 있었다..
가방을 집어드니 뒤에 있던 세관직원이 안에 칼 비슷한게 발견되어 그런다며 신분을 확인하고 따라 오라고 한다...
난 그냥 '쫌 귀찮게 하네.. 뭐 확인만 하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따라 갔었는데 칼을 꺼내 보여줬더니 이래저래 자로 재보고 하더니 15cm이하라도 용도에 따라 반입이 안된다고 한다..
흉기로 이용될 소지가 있는것은 크기에 관계없이 설사 장난감이라도 안된다고 한다...
그럼 과도는 흉기로 못쓰냐고 생떼도 써보고 보고 또, 길이도 짧은데 살짝 눈감아 주면 안되냐고 부탁도 해보았지만 "우짜겠냐? 법이 그런걸..." 이런다.. 말은 맞는데... 쩝
세관직원 얘기로 네팔 다녀오는 사람들이 이 칼을 참 많이 갖고 오는데 다 이렇게 빼앗긴단다...
그럼 네팔행 승객들에게 홍보라도 좀 해주면 안되냐고? 다들 15cm이하면 괜찮다고 알고 있는데...라고 말했지만 뭔 소용이 있으랴...묵묵부답이다... 칼 고를때의 즐거움으로 만족해야지.
찾을려면 한달안에 찾아야 하고 도검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데 한 30만원쯤... 그럼 또 총포랑 같이 왠지 세금도 꼬박꼬박 내야 할것 같고...
중국같은 경우는 큰칼도 상관없이 반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항가기전엔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 상대로 한 식당을 들렀다..
포카라의 길거리에서 꼬지에 꽂아 굽던 고기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는데 그게 보통 염소나 양고기, 혹은 물소고기라고 한다..
가이드와 사장님께 얘기했더니 공항가기전에 잘하는 곳으로 델꼬 갔는데 가이드 자신이 한번씩 가는곳이라고....
고기는 염소고기고 각 부위별로 여럿접시 시켰는데 한접시에 100루피가 조금 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좁은 식당안에는 현지인들로 가득하고 종업원은 우리에게 관심가득..
염소고기는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데 냄새도 없고 맛은 좀 괜찮았다...
근데 두사람은 위스키같은 현지술을 마시고 난 그술을 한두잔 마시고선 맥주로 한병먹었더니 배도 부르고 기분좋은 포만감은 아니었다..
현지 담배도 개비로 사서 한번 피워봤는데 독하기도 하고 뒷끝이 조금 매스꺼운듯 했다..
그나마 여기선 좋은 담배라고...
끝으로 현지 여행사 사장님...
네팔에서 학교 선생님 하시다가 98년쯤부터인가 한국에서 7년을 일했다고 한다..
이분은 그래도 다행히 좋은사장님을 만나 도움도 많이 받았고 지금도 한국사람들 땜에 밥먹고 산다고 생각하신단다..
그래서 한국인에 대한 감정도 좋은듯 하고 수익금의 일부는 기부도 하시는등 크게 욕심안내고 사업하시는 좋은분이신듯 했다..
카트만두 일정중에는 고급식당에서 사모님이랑 같이 식사도 하고 나중엔 공항까지 배웅 나오셔서 소박하지만 이런저런 선물도 챙겨주셔서 상당히 고마웠다..
정확한 수치는 잘 모르겠지만 세계 최빈국이라 일컫는 네팔의 카트만두 시내여행을 짧게나마 하며 느꼈던건
사회 기초적인 인프라가 전혀 구축이 안되어 있다는거다..
한나라의 수도 카트만두라는 곳이 매일 정전이 되고 지금 현재는 현지 여행사사장님 말로는 구역을 나눠 시간단위로 계획정전을 한다는데 10여시간씩 정전이 다반사라 일하기가 좀 힘들다고 한다..
세계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수자원이 풍부해 수력발전만 해도 충분한데 인도와의 문제도 있고해서 사장님 말로는 정부에서 안한다고...
그런탓에 밤만되면 캄캄하고 상점이나 호텔들은 자가발전기를 다들 갖추고 있는듯 했다..
또, 세계각지의 트레커들로 부터 팀스와 퍼밋요금을 받으면서도 히말라야 트레킹구간은 정작 국가에서 관리한 흔적은 별로 보이질 않았다..
길은 현지인들이 생활하기 위해 다 손으로 만든듯 하고 마을에도 전기까지도 자체적으로 만들어 쓰고있었다..
그리고 카트만두에도 상수도 시설조차 제대로 안갖춰져 있는듯 했다...
도로는 말할것도 없다 도심에도 비포장이 주를 이루고 포장된곳도 심하게 훼손되어 비포장이나 별반 다를것이...
그래서 매연과 더불어 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온갖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고 소나 닭같이 시골에서나 있을법한 동물들이 아무렇게나 시내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며
낡은차들에서 뿜는매연에 먼지까지 더해져서 좀 예민한 사람같음 10분도 길가에 못 서있을것 같았다..
또, 신호등 구경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이다..교통이 완전 엉망이다...
전기,물,도로 이 세가지가 안되어 있는데 어떻게 생산이 이뤄지고 발전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원이 없는것도 울나라와 비슷한데 울나라와 격차가 정말 심하다... 예전엔 울나라 보다도 더 잘살았다고 하는데...
지난 캐나다 여행땐 그나라의 모든것들이 참 부러웠는데 네팔을 보고부턴 우리는 부모님 세대의 희생으로 그나마 행복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 평소에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물론 물질이 풍요하다고 행복지수까지 높은건 아니지만...
카트만두 시내관광에서의 가이드가 자기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알고 여기도 박정희대통령 같은분이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한국에 10년째 빈번히 오가는 그 가이드의 개인적인 의견이라지만 내가 봐도 강력한 통치자가 나와서 싸그리 밀었버리고 기초부터 다시 건설했음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근데, 그분이 광주에서 오신분들께도 박정희대통령 얘기 꺼냈다가 따로 불려가 호되게 욕얻어 먹었다고 한다...ㅎㅎ
그때부터 한국엔 지역감정이 있구나 하고 이런 얘기는 조심스럽게 한다고...
공과를 떠나 일단은 먹고 사는거 부터 해결이 되어야 인권이든 민주주의든 가치가 더 빛나는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던 여태까지의 여행중 가장 길었던 약 15일정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여행후 국내에 돌아와 약간의 후유증을 앓았지만 MBC-ABC구간을 걸을때의 그 벅찬감동은 잊을 수가 없었다..
다만 아쉬웠던건 카트만두에서의 상황이 그럴줄 알았다면 촘롱이든 MBC든 좀 괜찮은 롯지에서 그냥 암것도 안하면서 하루를 보내는것도 참 좋았을것 같았다..
다들 보면 네팔은 한번 가고 끝내는 곳이 아닌 여러번 찾는 사람들이 참 많던데 언젠가는 또 가볼날이 있을것 같다..
그게 내년이 될지... 또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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